독서후기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고 난 후기와 주요내용을 정리한 포스팅입니다.

마이클 샌델 –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가 뭐지?
배트맨과 아이언맨같은 수퍼히어로가 지키려고 하는것?

샌델은 정의를 재화(소득/부/의무/권리/권력/기회/공직/영광)의 분배가 올바르게 분배되는 사회로 정의한 것 같다.
그는 재화의 분배를 이해하는 방식을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에 따라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노던의 자유지상주의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 철학자들의 견해를 직접 공감할만한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고, 이런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정말로 ‘ 정의란 무엇인가 ‘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단 내용이 재미있으면서 이해가 잘 된다. 왜 20년 연속 최고 명강의 였는지 알게 해준다. 

요즘 말하는 ‘이과적’ 사고를 가진 나에게 ‘정의’란 ‘선’이 ‘악’을 소탕하고 ‘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는데, ‘정의’의 의미가 어떤 철학적 사고를 하는지에 따라 충돌하거나 한 쪽에서의 정의가 다른 쪽에서는 정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준과 관점(행복, 자유, 미덕)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생각한 ‘바른 사회’의 기준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기 전의 나는 ‘정의’를 논하기 전에 ‘정직’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이 정직하지 않은 사회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은 정직으로만 되지는 않는다.

정직은 어쩌면 정의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 정도일지도 모른다.(중간에 칸트의 이론에 비슷한 내용이 잠깐 언급되어 반가웠다.)

마지막 장을 보더라도 ‘이것이 정의다’ 같은 결론은 없다. 다만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제공하고 현대에 맞는 정의의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내가 정의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겠지만, 내 생각과 방식이 보편적으로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시대, 상황, 관점에 따라 정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이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나의 미덕으로 삼아야 겠다.


마이클 샌델 - 정의란 무엇인가 책 표지

정의란 무엇인가 – 1강 옳은 일 하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거라고 가르친다.

거대하고 조직적인 경제의 힘이 2008~09년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주범이라면, 그보다 앞서 발생한 눈부신 이익도 마찬가지 아닐까? 저조한 작황이 날씨 탓이라면, 날이 좋을 때의 어마어마한 수확이 똑똑하고 부지런한 금융업자, 주식 거래인, 월스트리트 최고경영자들 덕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 건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에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눠준다.

대립하는 여러 주장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아냈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이상은 정의를 고민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암시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 2강 최대 행복 원칙 : 공리주의

만약 테러 용의자의 입을 열게 할 유일한 방법은 그의 어린 딸을 고문하는 것이라고 가정해보자(아이는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고문을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가? 아무리 강심장인 공리주의자라도 이 물음에는 주춤할 것이다.

벤담은 사람들의 선호도를 가치를 따지지 않은 채 모두 더해서 어떤 법이 필요한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렘브란트 그림을 감상하기보다는 투견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사회는 미술관보다는 투견장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할까?

밀은 이런 반박에서 공리주의를 구하려 한다. 그는 벤담과 달리 욕구의 양이나 강도만이 아니라 질을 평가해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 3강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 자유지상주의

게이츠와 윈프라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돈을 가져가는 행위는 명분이 무엇이든 강압 행위다. 이는 내 돈을 마음대로 쓸 자유를 침해한다. 이러한 근거로 재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흔희 ‘자유지상주의자’라고 부른다.

국가가 내 수입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 내 시간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 또한 있을 것이다. 가령 내 수입의 30퍼센트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내 시간의 30퍼센트를 떼어 국가를 위해 일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면, 본질적으로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의회가 조던에게(시즌의 3분의 1만이라도) 농구장으로 돌아오라고 강요할 수 없다면, 무슨 권리로 농구에서 번 돈의 3분의 1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환자가 아무리 다급한 상태라 해도, 국가 역시 내게 콩판 하나를 떼어 투석 환자를 도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왜? 콩팥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절실함’이 내 소유물을 내 마음대로 쓸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이 옳다면, 합의로 이루어진 식인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며, 자유권을 침해하는 조치다. 그렇다면 국가는 빌 게이츠와 마이클 조던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없듯이, 아민 마이베스 역시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 4강 대리인 고용하기 : 시장과 도덕

첫 번째 반박은 대안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자유시장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극단적인 예를 생각해보자. 다리 아래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는 그 행위를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그가 아파트보다 다리 아래에서 자는 것을 더 좋아하리라고 추측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랭글은 정책 입안자들의 자녀도 참전 부담을 나눠야 했다면 전쟁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이처럼 자원군을 지지하는 시장 논리에 대한 첫 번째 반박은 불공평 그리고 강제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계층간 차별이라는 불공평, 그리고 가난 때문에 대학 교육 등의 혜택을 받는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부과되는 강제다.

같이 나눠야 할 희생을 면제해주면 정치적 책임 의식이 약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는 돈을 받고 임신하는 행위를 돈을 받고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에 비교했다. 남자는 자신의 정자를 팔 수 있으므로, 여자도 자신의 생산 능력을 팔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 로버트 윌렌츠는 판결문에서, 대리 출산 계약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계약이 전적으로 자발적이지 않았으며, 거기에는 아기를 파는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리 임신 산업이 전 세계로 확대 되면서,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그러한 정책을 장려하면서, 대리 출산은 여성의 몸과 출산 능력을 도구로 전락시켜 여성을 비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

정의란 무엇인가 – 5강 중요한 것은 동기다 : 이마누엘 칸트

이마누엘 칸트는 의무와 권리에 대해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분명하고 영향력 있는 설명은 제시한다. -중략- 우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칸트는 첫 번째 시각(행복 극대화)과 세 번째 시각(미덕 장려)을 거부한다. 둘 중 어느 것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정의와 도덕을 자유와 연관시키는 두 번째 시각을 열렬히 옹호한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칸트 생각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을 목적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공리주의처럼 인간을 전체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동정심에서 나온 선행은 “아무리 옳고, 아무리 다정해도”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

어떤 행동이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바람직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가언명령이다.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따라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꼭 필요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정언명령이다.

칸트에게 도덕은 결과가 아닌 원칙의 문제라는 점을 기억하자.

거짓은 종류를 막론하고 “진실이라는 원천을 오염시킨다. 따라서 진실하기(정직하기)는 신성하고 조건 없이 적용되는 이성의 법칙이며, 그 어떤 편의상의 예외도 인정할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 6강 평등 옹호 : 존 롤스

롤스는 이 가언계약에서 정의의 원칙 두 가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원칙이다. -중략- 두 번째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한 원칙이다.

자발적 행위로서 계약은 자율을 표현한다. 계약으로 생긴 의무는 자발적으로 부과한 것이기에 중요하다. 상호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 계약은 호혜원칙이라는 이상에서 나온다. 상대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이익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에 계약을 이행한다.

계약의 도덕적 한계 두 가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동의했다고 해서 그 합의가 공정하다는 보장은 없다. 둘째, 합의만으로는 도덕적 의무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런 계약은 상호 이익은커녕 호혜라는 이상을 조롱할 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그들이 누구든,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에서만 자신의 행운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롤스는 성공에 이르는 사회적, 경제적 장벽만 제거된다면 누구나 재능이 선사하는 포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 위주 사회의 기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을 비판한다.

롤스는 분배 정의가 미덕이나 도덕적 자격을 포상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게임의 규칙이 정해졌을 때 생기는 합법적 기대를 충족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 7강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다양성 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은 입학 허가를 수혜자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본다.

드워킨의 주장에 따르면, 그 어떤 지원자도 대학에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대학의 사명은 무엇이어야 하고, 학문이든 운동이든 특정 실력을 기준으로 입학을 심사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드워킨의 요지는 입학 허가에서 정의는 능력이나 미덕을 포상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이 사명을 정한 뒤에야 신입생에게 강의실 자리가 공정하게 분배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할 수 있다.

소수집단우대정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단지, 중요한 전문직에서 다양성 증대가 중요해지다 보니,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라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특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의는 흔히 영광과 관계된다. 분배 정의에 관한 논쟁은 누가 무엇을 갖는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광과 포상을 얻는 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사회조직이 자체적으로 사명을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무엇이 능력으로 인정받는지 정해진다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갈 기회를 할당할 때의 정의는 대학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선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대학 입학을 돋 받고 파는 행위가 왜 부당한가를 설명해준다.

정의란 무엇인가 –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그리고 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는 대개 사회조적의 목적, 즉 텔로스에 관한 논의이며, 텔로스 논의는 사회조직이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주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들을 반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다. -중략-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게 만드는 것, 즉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행복은 마음 상태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며, “미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행동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미덕은 우선 그것을 연습해야 얻을 수 있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정의란 무엇인가 –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도덕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이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나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된다. 둘 다 우리 자신을 어딘가에 소속된 자아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 큰 삶의 일부로 이해하고 감당하는 기질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독립된 존재여서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여러 목적에 중립적인 권리의 틀이 필요하다.

선을 고민할 때 우리 정체성의 근거지인 공동체의 선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면, 중립을 갈망하는 태도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정의란 무엇인가 – 10강 정의와 공동선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략-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적 이해 방식은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이고, 둘째는 인간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하면서 그것들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은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만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중략-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의 도덕적 가치, 우리 삶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특성과 질은 하나같이 정의의 영역을 벗어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로버트 케네디 연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국민총생산)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렇다면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상되는 몇가지 주제를 살펴보자.
1. 시민 의식, 희생, 봉사
2. 시장의 도덕적 한계
3.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정부가 이러한 이견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란 불가능하지만,적어도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정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구제 금융, 대리 출산, 동성 결혼, 과거사 공개 사과 등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문제를 통해 ‘무엇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해답을 탐구했다. 이 책은 탁월한 정치 철학자들이 남긴 시대를 초월한 철학적인 질문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이를 통해 옳고 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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